6부 · 몸으로 묻다
내가 피험자가 된다
연구는 평균을 말한다. 평균적으로 적게 먹은 사람들이 덜 늙더라는 것. 그러나 평균은 누구의 얼굴도 아니다. 알맞은 비움의 박자가 사람마다 다르다면, 그 평균이 바로 이 몸에 맞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래서 남은 길은 하나였다. 나를 첫 번째 피험자로 삼는 것.
방법은 단순하다. 한동안은 평소대로 산다. 그동안 몸의 상태를 그저 기록만 한다. 다음 한동안은 비움의 네 가지를 일상에 들인다. 느린 호흡, 강약을 둔 수련, 저녁의 고요한 명상, 그리고 주기적인 절식. 그런 뒤 다시 멈추고, 다시 들인다. 들이고 멈추기를 되풀이하며, 그 사이에 몸의 숫자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본다. 손목의 시계가 심박의 출렁임과 잠을 기록하고, 아침의 작은 기계가 공복의 혈당을 적고, 저울이 군더더기의 증감을 짚는다.1
여기서 앞서 배운 것이 그대로 설계가 된다. 비움만이 아니라 비움과 채움의 박자였으니, 멈추는 기간을 일부러 끼워 회복이 얼마나 오래 가는지를 본다. 25퍼센트는 늘 비워 두라 했으니, 수련도 한계까지 밀지 않고 여유를 남긴 채 강약을 번갈아 둔다. 소옹의 ’쓰지 않는 하나’를, 내 일과의 설계로 옮기는 셈이다.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이것은 병을 고치는 치료가 아니다. 몸을 기르는 양생의 기록이며, 어디까지나 나 한 사람에게 적용하는 자기 실험이다. 누구에게 무엇을 하라는 처방이 아니다. 약이 필요한 자리는 전문가의 몫으로 남기고, 여기서 재는 것은 일상의 습관이 이 몸에 남기는 자취일 뿐이다. 어지럽거나 무리가 오면, 숫자보다 몸의 말을 먼저 듣고 멈춘다.
그리고 잊지 않는다. 숫자는 진실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지, 진실 그 자체가 아니다. 심박의 출렁임이 커졌다고 도를 이룬 것이 아니며, 노화의 눈금이 느려졌다고 진인이 된 것도 아니다. 측정은 다만, 짐작을 사실로 바꾸고 망령된 우김을 막는 자리에 쓸 뿐이다. 앞에서 다짐한 그 경계를, 내 몸을 잴 때에도 똑같이 지킨다.
몇 주의 기록이 쌓이면, 흐릿하던 것이 조금씩 또렷해질 것이다. 어떤 비움이 이 몸에 약이 되고 어떤 비움이 독이 되는지, 들이고 멈추는 박자가 며칠일 때 가장 알맞은지. 평균이 말해 주지 못한 것을, 한 사람의 종단 기록이 말해 주기 시작한다.
그런데 막상 이 네 가지—호흡과 수련과 명상과 절식—를 한 일과에 들여 놓고 보니, 새삼스러운 깨달음이 왔다. 이것들은 따로따로의 건강법이 아니었다. 세포와 신경과 뇌라는 한 몸의 세 층위를, 네 가지 손길로 함께 다듬는 하나의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 하나의 일에는, 마땅한 하나의 이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다음 물음: 흩어진 네 가지 수련을 하나로 꿰는 자리를, 무엇이라 부를 수 있는가?
Foot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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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단위(N-of-1) 자기검증 설계 — 도입과 중단을 번갈아(A-B-A-B) 반복하며 심박변이도·안정 시 심박수·공복 혈당·체조성·수면·주관 컨디션을 추적한다. 본 글은 양생 기록이며 치료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