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부 · 몸으로 묻다
진인의 몸을 잴 수 있을까
옛 의서가 그린 진인의 몸은 아름답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다. 호흡이 깊고 가늘며, 적게 먹어도 기운이 충만하고, 외부의 자극에도 마음이 잔물결 하나 없이 고요한 사람. 시(詩)처럼 들린다. 그러나 시는 측정되지 않는다. 정말 그런 몸이 있다면, 보통의 몸과 무엇이 다른지를 숫자로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
뜻밖에도, 현대 의학은 그 숫자들을 하나씩 갖추어 가고 있다.
첫째는 마음의 고요다. 심장은 기계처럼 똑같은 간격으로 뛰지 않는다. 건강하고 여유로운 몸일수록 박동 사이의 간격이 미세하게 출렁인다. 이 출렁임의 폭—심박변이도—이 클수록 회복을 맡는 신경이 잘 살아 있다는 뜻이다. 스트레스에 휘둘리지 않는 고요한 몸은 이 값이 높고, 안정 시 심박수는 낮다.1 진인의 ’동요 없는 마음’이 손목의 시계로 읽히는 셈이다.
둘째는 깨끗한 에너지다. 같은 힘을 내도 어떤 몸은 찌꺼기를 적게 흘리고, 어떤 몸은 많이 흘린다. 그 산화의 찌꺼기를 나타내는 지표가 낮을수록, 발전소가 깨끗하게 돌고 있다는 뜻이다. 진인의 ’정미한 기운’이 혈액 검사의 숫자로 비친다.
셋째는 늙는 속도다. 같은 한 해를 살아도 누구는 더 빨리, 누구는 더 천천히 늙는다. 이제는 그 노화의 속도 자체를 재는 지표가 있다. 적게, 알맞게 줄여 산 몸에서 이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을, 앞에서 본 연구가 보여 주었다.2 진인의 ’오래 사는 몸’이 노화 속도계의 눈금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묘한 사건이다. 도교의 은유로나 전해지던 진인의 몸이, 손목의 맥박과 한 방울의 피와 몇 줄의 숫자로 번역되기 시작한 것이다. 동양이 수천 년 지켜보며 시로 적어 둔 것을, 현대 과학이 이제 숫자로 받아 적고 있다.
물론 경계는 그대로 둔다. 숫자가 곧 진인은 아니다. 심박변이도가 높다고 도를 이룬 것도 아니고, 노화 지표가 느리다고 성인이 된 것도 아니다. 숫자는 몸의 한 단면을 비출 뿐, 사람의 전부를 담지 못한다. 측정으로 환원되지 않는 자리가 분명히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적어도 몸의 차원에서는 옛말과 오늘의 숫자가 같은 쪽을 가리킨다는 점이다.
그러나 숫자가 있다고 답이 끝난 것은 아니다. 모든 연구는 ’평균’을 말한다. 평균적으로 적게 먹은 사람들이 덜 늙더라는 것. 그런데 앞에서 보았듯, 알맞은 비움의 박자는 사람마다 다르다. 평균이 나에게 그대로 맞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하나뿐이다. 평균을 따르는 대신, 나 자신을 한 명의 표본으로 삼아 직접 재 보는 것.
다음 물음: 평균이 아니라 바로 이 몸에 무엇이 맞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