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무엇으로 사는가

6부 · 몸으로 묻다

비움의 세 층위

자연과 옛 글을 한 바퀴 돌아, 물음은 마침내 제자리로 왔다. 그것을 묻고 있는 사람의 몸이다. 순록의 비움, 세포의 비움, 마음의 비움. 이 흩어진 비움들이 한 사람의 몸 안에서는 어떻게 만나는가.

자료를 모아 놓고 보니, 비움은 몸의 세 층위에서 똑같은 모양으로 일하고 있었다.

가장 깊은 곳은 세포다. 세포는 낡고 망가진 부품을 골라 분해해 치운다. 손상된 단백질, 못 쓰게 된 발전소를 비워 내고 그 자리에 새것을 짓는다. 몸의 가장 작은 단위에서 일어나는 비움이다.

그 위는 자율신경이다. 사람의 몸에는 두 개의 신경 갈래가 있다. 하나는 위급할 때 몸을 긴장시켜 가속하는 갈래(교감신경)이고, 다른 하나는 쉴 때 몸을 늦추어 회복시키는 갈래(부교감신경)다. 늘 긴장해 가속만 하면 몸은 닳는다. 긴장을 비우고 회복 쪽으로 넘어가는 것, 그것이 이 층위의 비움이다. 느린 숨, 깊은 휴식이 이 갈래를 켠다.1

가장 위는 뇌다. 뇌에는 가만히 있을 때 끊임없이 켜져 잡념과 자기 생각을 굴리는 회로가 있다. 깊은 명상에 들면 이 회로가 가라앉는다.2 끊임없이 ’나’를 되뇌던 생각의 잡음이 잦아드는 것. 곧 마음의 비움이다. 앞에서 소옹이 말한 ’나를 비움’이, 뇌에서는 이렇게 자기 생각 회로의 가라앉음으로 나타난다.


세 층위는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함께 움직인다.

느린 숨 하나가 자율신경을 회복 쪽으로 넘기고, 그 고요가 뇌의 잡념 회로를 가라앉히며, 그렇게 가라앉은 몸에서 세포의 청소가 더 잘 돌아간다. 거꾸로 세포의 염증이 줄면 뇌의 안개가 걷히고 마음이 맑아진다. 한 기공 연구는 십이 주의 수련이 몸속 염증 수치를 낮추고, 그 낮아진 염증이 뇌의 기억 영역을 키워 집중력을 끌어올렸음을 보여 주었다.3 세포의 비움이 뇌의 맑음으로 이어진 것이다.

여기서 비로소 흩어진 조각들이 한 그림으로 맞춰진다. 순록이 위장에서, 살갗에서, 핏줄에서 같은 솜씨로 비웠듯, 사람의 몸도 세포에서, 신경에서, 뇌에서 같은 솜씨로 비운다. 단식이 세포를 청소하고, 느린 숨이 신경을 늦추고, 명상이 마음을 비운다. 이 셋은 따로 떨어진 건강법이 아니라, 한 몸의 세 층위를 동시에 다듬는 하나의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의심 많은 마음이 또 한 번 끼어든다. 세포가 청소되고 신경이 늦춰지고 마음이 맑아진다는 이 그림은 그럴듯하다. 그러나 그럴듯함은 증거가 아니라고, 바로 앞 편에서 다짐하지 않았던가. 정말 내 몸에서 이 비움이 일어나는지, 일어난다면 얼마나 일어나는지를, 짐작이 아니라 눈으로 확인할 길은 없는가.

다음 물음: 옛사람이 말한 ’맑고 가벼운 몸’을, 오늘 우리는 숫자로 잴 수 있는가?


Footnotes

  1. 자율신경의 교감–부교감 균형. 느린 호흡은 미주신경(부교감)을 활성화해 심박변이도를 높이고 회복 쪽으로 균형을 옮긴다.

  2. 자기참조적 사고를 담당하는 기본모드 네트워크(DMN)는 깊은 명상에서 활성이 감소한다. 곧 ’나’를 되뇌는 회로의 가라앉음이다.

  3. 12주 기공 무작위 대조시험 — 말초 염증 지표(IL-6) 감소가 해마 부피 증가와 지속적 주의 향상을 매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