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무엇으로 사는가

5부 · 소옹에게 묻다

넷을 두고 셋만 쓴다

천 년 전 송나라의 학자 소옹은 세상을 수(數)로 읽으려 한 사람이다. 그에게 수는 점치는 도구가 아니라, 천지가 돌아가는 이치를 적은 문법이었다. 그 셈의 한가운데에 묘한 규칙이 하나 있다. 체사용삼(體四用三). 바탕은 넷으로 세우되, 실제로 쓰는 것은 셋이고, 하나는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 들으면 손해처럼 들린다. 넷이 다 있는데 왜 굳이 셋만 쓰는가. 멀쩡한 하나를 놀리는 것은 낭비가 아닌가. 그러나 소옹의 뜻은 정반대였다. 쓰지 않는 그 하나는 버려진 것도, 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나머지 셋이 제대로 돌아가게 받쳐 주는 ’비워 둔 자리’라는 것이다. 그는 이를 두고, 쓰지 않음으로써 보존한다(不用而存)고 했다.1 쓰지 않는 것이 곧 살려 두는 것이라는, 묘한 말이다.

그가 든 예가 달력이다. 한 철을 이루는 데는 본래 넉 달이 마땅하다. 그런데 실제로는 한 달을 늘 비워 두어, 한 철의 쓰임은 석 달에서 멈춘다. 비워 둔 그 한 달이 있어야 사계절의 순환이 어긋나지 않고 맞물려 돌아간다는 것이다. 톱니바퀴 사이에 약간의 틈이 있어야 맞물려 도는 것과 같다. 틈을 없애 빈틈없이 채우면, 바퀴는 도리어 멈춰 버린다. 비움은 결손이 아니라, 질서를 가능케 하는 여백이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지금까지 따라온 모든 그림이 한자리에 모였다.

순록이 겨울에 비워 둔 대사, 세포가 낡은 것을 비워 낸 자리에 새 발전소를 짓던 일, 적게 먹어 군더더기를 비운 가벼운 몸, 텅 비우지 않고 알맞은 선에서 멈추던 마음. 그 모든 비움이 결국 같은 한 가지를 말하고 있었다. 다 쓰지 않고 얼마를 비워 두는 것이, 전체가 제대로 돌아가는 조건이라는 것. 흩어져 보이던 사례들이, 소옹의 이 한 규칙 아래로 줄지어 들어왔다. 그는 자연 곳곳에 흩어진 그 이치를 끌어모아, 하나의 수리(數理)로—세상을 읽는 한 줄의 규칙으로—세워 둔 것이다.

현대 과학에도 같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사람의 장기에는 평소 쓰는 것보다 훨씬 큰 여유가 숨어 있다. 심장도 콩팥도 폐도, 평소엔 제 능력의 일부만 쓰고 나머지는 비축해 둔다. 그 비축이 있어 갑작스러운 부하를 견딘다. 그리고 그 여유가 나이와 함께 조금씩 줄어드는 것, 그것이 곧 노화의 한 얼굴이다. 생태계도 같다. 같은 일을 맡는 여러 종을 겹쳐 두어야, 한 종이 사라져도 전체가 무너지지 않는다.2 다 쓰지 않고 남겨 둔 몫이 위기를 견디게 한다는 것. 소옹의 ’쓰지 않는 하나’가 천 년 전에 가리킨 자리에, 현대 과학이 다른 이름으로 도착해 있었다.

다만 여기서도 그 빗장을 잊지 않는다. 소옹의 셈과 현대의 예비 용량이 ’닮았다’는 것이지, ’같다’는 증명은 아니다. 닮음은 생각을 밝히는 등불이되, 등불을 해라고 우겨선 안 된다.


그런데 소옹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 ’비움이 곧 조건’이라는 생각을, 더 밀어붙여 한 문장으로 못 박았다. 그 문장은 비움에 대해 지금껏 들어온 어떤 말보다 한 걸음 더 멀리 나아간다. 언뜻 모순처럼 들리는, 그러나 곱씹을수록 깊어지는 한 문장이다.

다음 물음: 변하지 않는 것이, 어떻게 도리어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가?


Footnotes

  1. 소옹 「관물외편」 — “天之體數四, 而用者三, 不用者一也.” 쓰지 않는 하나(不用之一)는 소멸이 아니라 작동을 가능케 하는 근원의 보존이다.

  2. 장기 예비 용량(organ reserve)의 감소가 노화의 한 얼굴이며, 생태계의 기능적 잉여(같은 기능을 맡는 여러 종의 겹침)가 교란에 대한 완충이 된다. 단, 이는 소옹 원리와의 구조적 유비이지 동일성의 증명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