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무엇으로 사는가

4부 · 본초에게 묻다

음식과 약은 뿌리가 같다

식약동원(食藥同源). 음식과 약은 그 뿌리가 같다는 오랜 말이다. 처음에는 그저 점잖은 격언으로 들렸다. 식당 벽에 걸린 액자의 문구쯤으로. 그러나 비움의 이치를 따라 여기까지 오니, 그것이 한가한 격언이 아니라 단단한 선언이었음을 알겠다.

생각의 실마리는 앞 편에 있었다. 으뜸가는 약인 상품이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몸을 기르는 것이라면, 그 약은 매일 먹는 음식과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 둘 다 하는 일이 같기 때문이다. 몸의 바탕을 다듬어, 잘 변환하는 몸을 만드는 것. 실제로 대추, 생강, 마, 구기자 같은 것들은 약장에도 있고 부엌에도 있다. 약차로 달이면 약이고, 밥에 넣으면 음식이다. 약과 음식의 경계가 이렇게 흐려지는 자리, 바로 거기에 양생의 핵심이 있었다. 잘 먹는 것이 곧 잘 다스리는 것이며, 다스림의 목표는 병을 끄는 것이 아니라 몸이 스스로 잘 비우고 잘 돌도록 바탕을 기르는 것이라는 선언.

이 발상은 오늘의 영양학이나 기능성 식품 이야기와도 멀지 않다. 무엇을 먹느냐가 곧 약이 된다는 생각. 다만 옛사람이 한 걸음 더 멀리 본 것이 있다. 약과 음식을 둘로 딱 잘라 가르지 않고, 하나의 연속된 띠로 보았다는 점이다. 한쪽 끝에 매일의 거친 밥이 있고, 가운데에 약차나 약선 같은 것이 있고, 다른 끝에 본격적인 약이 있다. 그 사이는 끊김 없이 이어져 있다. 매일의 밥상이 곧 가장 낮은 단계의, 그러나 가장 오래 먹는 약인 셈이다.1


그러니 가장 으뜸가는 양생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귀한 약초를 구하러 깊은 산을 헤매는 일이 아니라, 매일 마주하는 밥상을 어떻게 차리고 어떻게 비우느냐에 있었다. 무엇을 적게, 맑게, 알맞게 먹을 것인가. 거친 것을 곁들여 몸 안의 미생물을 먹이고, 언제 비우고 언제 채울 것인가. 약과 음식의 뿌리가 같다는 말은, 결국 평범한 밥상이 양생의 첫 자리이자 마지막 자리라는 뜻이었다. 비방을 찾던 눈을 돌리면, 답은 늘 식탁 위에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한 가지가 또렷해진다. 자연에서도, 세포에서도, 옛 의서에서도, 본초에서도, 같은 한 마디가 거듭 되풀이되었다. 비우는 것이 곧 채우는 일이고, 덜어 내는 것이 곧 기르는 일이라는 것. 더 많이 들이는 데가 아니라, 잘 비우고 잘 돌게 하는 데에 정교함이 있다는 것. 순록의 위장에서 처음 본 그 한 줄이, 다섯 갈래의 다른 입을 거쳐 똑같이 되돌아왔다.

그런데 이 되풀이가 우연일까. 자연과 의학과 약이 어쩌다 비슷한 결론에 이른 것일까, 아니면 그 다섯 갈래의 밑바닥에 더 깊은 하나의 이치가 흐르고 있는 것일까. 마침 동양철학에는, 바로 이 ’비움이 작동의 조건’이라는 생각 하나를 평생에 걸쳐 끝까지 밀고 간 사람이 있었다.

다음 물음: 비움이 곧 작동의 조건이라는 이치를, 누가 가장 깊이 파고들었는가?


Footnotes

  1. 식약동원(食藥同源) — 음식과 약은 같은 근원을 가지며 예방·양생에서 같은 기능을 한다는 관점. 현대 기능성 식품 담론과 접점이 있으나, 옛사람은 약–음식을 단절이 아닌 하나의 연속체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