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 본초에게 묻다
上品은 병을 고치지 않는다
가장 오래된 약물 책인 『신농본초경』은 수백 가지 약을 세 등급으로 나눈다. 그런데 그 나누는 기준이 오늘의 상식과 사뭇 다르다.
맨 아래, 하품(下品)이 병을 고치는 약이다. 독이 있어 함부로 오래 먹어선 안 되고, 병이 물러가면 끊어야 한다. 가운데, 중품(中品)은 빈 것을 채우는 보약이다. 허약을 메우되 역시 가려 써야 한다. 그리고 맨 위, 상품(上品)에 붙은 설명이 묘하다. “오래 먹어도 독이 없고, 몸을 가볍게 하며, 기력을 더한다.” 다시 보아도 이상하다. 병을 고친다는 말이 없다. 으뜸가는 약이 정작 병을 고치는 약이 아닌 것이다. 상품은 병을 끄는 약이 아니라, 평소에 몸을 길러 가볍게 하는 약이었다.
여기서 약에 대한 통념이 뒤집힌다. 우리는 약이라 하면 아픈 데를 고치는 것을 떠올린다. 불을 끄는 소방수처럼, 문제가 터진 뒤에 달려가는 것. 그러나 옛사람이 으뜸으로 친 약은 불을 끄는 약이 아니라, 애초에 불이 나지 않을 집을 짓는 약이었다. 병이 난 뒤 끄는 것이 아니라, 병이 깃들지 않을 몸을 평소에 다듬는 것. 양명(養命), 곧 생명을 기르는 일이 약의 가장 높은 자리에 놓였다. 가장 좋은 의원은 병을 잘 고치는 의원이 아니라 병들지 않게 하는 의원이라던 옛말과, 정확히 같은 자리다.
그 으뜸 중의 으뜸이 인삼이다. 옛 책은 인삼을 두고 “오래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수명이 는다(久服輕身延年)“고 적었다.1 앞에서 줄곧 따라온 그 말, 가벼운 몸이 약물 책의 첫 자리에도 그대로 박혀 있는 것이다. 인삼만이 아니다. 대추, 구기자, 영지 같은 상품의 약재들은 하나같이 급히 병을 꺾는 것이 아니라, 오래 두고 먹어 몸의 바탕을 고르는 것들이다.
여기서 비움의 길과 약이 어긋나지 않고 만난다. 상품의 약은 무언가를 더 들이붓는 약이 아니었다. 몸이 스스로 잘 변환하도록—잘 분해하고 잘 되돌리고 잘 비우도록—그 바탕을 정비하는 약이었다. 막힌 데를 뚫고 처진 데를 북돋아, 몸이 제 솜씨를 되찾게 하는 것. 그러니 상품의 약은 ’더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잘 돌게 하는 것’에 가깝다. 비움을 말하는 이 길에서도, 약은 어색하지 않게 제자리를 찾는다.
이 발상은 현대에도 메아리가 있다. 병을 고치는 약과는 별개로, 몸이 스트레스와 변화에 견디는 힘 자체를 고르게 북돋는다는 물질들—이른바 적응 물질(adaptogen)—에 대한 연구가 그것이다. 인삼이 그 대표 격이다. 너무 처진 것은 끌어올리고 너무 들뜬 것은 가라앉혀, 어느 쪽으로든 치우친 몸을 가운데로 되돌린다는 것. 무엇을 고치기보다 균형을 잡아 준다는 그 방향이, 상품의 논리와 묘하게 닮았다.2
방향은 닮았다. 그러나 닮음을 곧바로 믿어선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12편에서 이미 뼈저리게 배웠다. 게다가 약의 세계에는 자연의 세계보다 더 도드라진 함정이 하나 더 있다. 다름 아닌, 상품의 그 자랑—“오래 먹어도 독이 없다”는 말 자체다. 가장 솔깃한 그 한마디가, 가장 위험한 함정이기도 했다.
다음 물음: ’오래 먹어도 독이 없다’는 옛말을, 오늘 우리는 그대로 믿어도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