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무엇으로 사는가

3부 · 옛 의서에게 묻다

세속 안에서 — 성인의 길

진인은 천지를 넘나든다 했다. 호흡만으로 살고 천지와 더불어 수명을 다한다는, 그 아득한 경지. 솔직히 그것은 보통 사람의 길이 아니다. 흥미롭게도, 동양철학의 큰 산인 소옹조차 자신의 인간 분류에 진인의 자리를 두지 않았다. 그는 천지를 넘어서는 존재를 세우는 대신, 세상 안에서 제 몫을 다하는 사람을 가장 높은 자리에 두었다.1 닿을 수 없는 신선을 좇기보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을 가리킨 것이다.

『황제내경』에도 바로 그런 사람이 있다. 진인도 지인도 아닌, 세속 한가운데 사는 성인(聖人)이다. 옛 글은 그를 네 마디로 그린다. 천지의 조화 속에 머물고(處天地之和), 세상 사이에서 욕심을 알맞게 다스리며(適嗜欲), 성내고 노여워하는 마음이 없고(無恚嗔), 편안한 즐거움과 스스로 만족함을 일로 삼는다(恬愉自得). 그렇게 형체가 쇠하지 않고 정신이 흩어지지 않아 백 세에 이른다 했다.

이 네 마디를 하나씩 풀면 그대로 살림의 지침이 된다. 처천지지화는 자연의 큰 흐름을 거스르지 않음이고, 적기욕은 욕심을 끊는 것이 아니라 알맞은 선에서 누림이다. 무에진은 성냄과 놀람으로 제 기운을 함부로 태우지 않음이며, 염유자득은 바깥의 인정이 아니라 제 안에서 만족을 길어 올림이다. 무엇 하나 산속의 도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말은 ’세상 사이에서(於世俗之間)’다. 성인은 산으로 숨지 않는다. 일하고 사람을 만나고 욕심을 가진 채로, 다만 그것을 알맞게 다스리며 산다. 끊는 것이 아니라 조절하는 것. 적게가 아니라 알맞게. 비우되 텅 비우지는 않는 것. 지금까지 거듭 만난 그 박자가, 마음의 살림에서도 똑같이 흐른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성인을 보통 사람이 디딜 수 있는 자리로 만든다.


성인의 두 마음가짐, 항유(恬愉)와 자득(自得)은 멀리 있지 않다. 편안한 즐거움과 스스로 만족함. 현대 심리학의 말로 옮기면 평정심과 내재적 동기에 가깝다.2 바깥의 칭찬과 비교에 끌려다니지 않고, 작은 일에서 제 안의 만족을 길어 올리는 마음. 차 한 잔, 한 번의 산책, 잘 끝낸 하루에서 흡족함을 느낄 줄 아는 마음이다. 그리고 성내지 않는 마음이 몸의 염증을 가라앉힌다는 것도, 이제는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분노와 만성 스트레스가 몸을 안에서부터 태운다는 것을 현대 의학도 거듭 확인한다.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곧 몸을 기르는 일이었던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소옹 자신이 바로 이 성인의 모습으로 살았다는 점이다. 그는 깊은 산의 은자가 아니었다. 도시 한복판의 작고 소박한 집—스스로 ’편안한 둥지’라 이름 붙인 곳—에서, 세상을 등지지 않고도 편안한 즐거움으로 한 생을 보냈다. 가난했으나 궁하지 않았고, 벼슬을 마다했으나 사람을 피하지 않았다. 세속 안의 양생이 한낱 이상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 낼 수 있는 삶임을, 한 철학자가 제 생애로 증명해 보인 셈이다. 날마다 출근하고 부대끼며 사는 오늘의 우리에게, 이보다 가까운 본보기도 드물다.


자연에게 물어 얻은 비움의 이치가, 옛 의서를 거치며 마침내 사람의 삶으로 내려왔다. 정미하게 들이고, 군더더기를 덜고, 계절을 따르고, 세속 안에서 마음을 다스린다. 먹는 것과 몸 쓰는 것, 그리고 마음 쓰는 것까지. 양생의 길이 제법 또렷이 그려졌다.

그런데 한 가지가 남았다. 옛사람은 먹고 마음 쓰는 일에 더해, 약(藥)을 말했다. 그것도 병을 고치는 약이 아니라, 오래 먹어 몸을 기른다는 묘한 약을. 덜어 냄을 줄곧 말해 온 이 길에서, 무언가를 일부러 더 들이는 약은 대체 어떤 자리에 놓이는 것일까. 비움의 이치와 약은, 어쩌면 어긋나는 것은 아닐까.

다음 물음: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몸을 기른다’는 옛 약은, 비움의 이치와 어떻게 만나는가?


Footnotes

  1. 소옹의 인간 분류(성인·현인·재인·중인)에는 천지를 초월하는 진인의 대응이 없다. 소옹은 성인을 최고로 보았고, 그 자신이 도시 속 入世 양생의 모델(안락와, 安樂窩)이었다.

  2. 「상고천진론」의 성인 — 處天地之和·適嗜欲·無恚嗔·恬愉自得. 항유(恬愉)·자득(自得)은 현대 심리학의 평정심·내재적 동기에 대응하며, 만성 분노·스트레스는 염증 증가와 연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