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 옛 의서에게 묻다
가벼운 몸, 계절을 따르는 삶
옛 의서는 가장 좋은 약을 두고 한결같이 같은 말을 적었다. 몸을 가볍게 한다, 경신(輕身). 병을 고친다는 말도, 힘을 더한다는 말도 아니다. 그저 몸을 가볍게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말이 밋밋하게 들린다. 좋은 약이라면 마땅히 병을 낫게 하거나 힘을 솟게 해야 할 것 같은데, 옛사람은 굳이 ’가볍게 한다’를 으뜸으로 꼽았다.
그러나 곱씹어 보면 깊다. 무게를 줄인다는 뜻이 아니다. 군더더기를 덜어 낸다는 뜻이다. 쓸데없이 쌓인 것, 흐름을 막는 것, 몸을 둔하게 만드는 것을 덜어 내어 거뜬하게 한다는 것. 아침에 잘 자고 일어난 날의 그 개운함, 군것질을 끊고 속을 비운 며칠 뒤의 그 맑음을 떠올리면 된다. 더 채워서가 아니라 덜어 내서 얻는 가벼움이다.
여기서 앞의 그림이 그대로 되돌아온다. 적게, 알맞게 줄인 몸에서 군살과 염증이 빠지고 늙는 속도가 느려지더라는 그 측정값. 그것이 옛사람이 경신이라 부른 상태와 거의 포개진다.1 가벼운 몸은 시인의 막연한 비유가 아니었다. 덜어 냄으로 얻는, 오늘의 저울과 혈액 검사로도 읽히는 또렷한 몸의 상태였다.
옛 의서는 가벼운 몸에 이르는 또 하나의 길을 일러 둔다. 계절을 따르는 것이다.
『황제내경』의 한 편은 사철의 살림법을 이렇게 적는다. 봄에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 뜰을 거닐고, 여름에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 햇볕을 꺼리지 말며, 가을에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마음을 거두고, 겨울에는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 추위를 피하라. 철마다 자고 깨고 움직이는 박자를 자연의 빛에 맞추라는 것이다. 봄여름에는 펼치고 가을겨울에는 거두는 이 한 해의 박자는, 순록이 겨울에 줄이고 봄에 채우던 그 박자와 정확히 같다.
사람의 몸도 한 해의 흐름을 탄다. 빛과 어둠, 더위와 추위가 바뀜에 따라 호르몬과 대사가 미세하게 출렁인다는 것을 현대 연구도 보여 준다.2 자연의 큰 박자에 제 몸의 작은 박자를 포개는 것, 그것이 옛사람의 계절 양생이었다. 비움–채움의 리듬이, 하루를 넘어 한 해의 단위로도 흐르고 있었던 셈이다.
다만 여기에는 오늘의 그늘이 하나 있다. 우리는 사철 같은 온도의 방에서, 밤에도 대낮처럼 환한 불빛 아래 산다. 겨울에도 반팔을 입고, 한밤에도 화면을 들여다본다. 자연의 계절 신호가 그만큼 흐려졌다. 옛 의서가 당연한 전제로 깔았던 조건—자연의 리듬에 그대로 몸이 노출된 삶—이 사라진 자리에서, 계절을 따른다는 것은 이제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라 일부러 챙겨야 하는 일이 되었다. 아침 햇빛을 일부러 쬐고, 밤에는 불빛을 일부러 줄이는 것. 잃어버린 박자를 의식적으로 되찾는 것이다.
가벼운 몸과 계절의 박자. 정미하게 들이고, 군더더기를 덜고, 자연의 리듬에 몸을 맞추는 삶. 여기까지 들으면 한 가지 의심이 들 법하다. 그것은 산속에 들어가 세상을 등진 사람에게나 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날마다 출근하고 사람에 부대끼며 사는 보통 사람에게도, 이 길이 정말 열려 있는가.
옛 의서는 바로 그 물음에 답하는 사람을 따로 마련해 두었다. 진인도 지인도 아닌, 세속 한가운데 두 발을 딛고 사는 사람.
다음 물음: 세상을 떠나지 않고도 가벼운 몸으로 사는 길이, 보통 사람에게 열려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