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무엇으로 사는가

3부 · 옛 의서에게 묻다

氣를 오늘의 말로 옮기면

기(氣)는 동양에서 가장 자주 쓰이면서 가장 붙잡기 어려운 말이다. 기운이 난다, 기가 막힌다, 기가 허하다, 기가 죽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입에 오르지만, 막상 그것이 무엇이냐 물으면 손에 잡히는 답이 없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으면서, 있고 없음은 분명히 느껴지는 무엇. 그래서 기는 곧잘 신비의 안개 속에 놓인다.

그러나 옛 주석가들은 이 글자를 함부로 신비롭게만 두지 않았다. 당나라의 의학자 왕빙은 진인을 풀이하며, 한 줄의 사다리를 그렸다. 마음이 기에 합하고(心合於氣), 기가 신에 합하고(氣合於神), 신이 무에 합한다(神合於无).1 눈여겨볼 것은 그 차례다. 맨 아래 마음이 있고 맨 위에 생명의 근원이 있는데, 그 사이를 잇는 가운데 칸에 기가 놓인다. 곧 기는 마음과 생명력을, 의식과 몸을 잇는 다리—매개하는 에너지로 그려진 것이다. 막연한 안개가 아니라, 구조 속의 분명한 한 자리였다.

이 가운데 자리에, 현대 생물학의 한 기관이 묘하게 들어맞는다. 앞에서 본 세포의 발전소, 미토콘드리아다. 미토콘드리아는 단지 힘만 내는 곳이 아니다. 에너지를 만드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나오는 신호로 면역을 깨우고 세포의 삶과 죽음까지 조율한다. 대사와 신호, 몸과 마음 사이를 잇는 가운데 자리에 있는 셈이다. 기운이 없다는 말이 곧 발전소가 시원찮다는 말과 겹치고, 만성 피로가 미토콘드리아 기능 저하와 맞물린다는 연구도 쌓여 있다. 실제로 최근 한 저명한 연구자는 “미토콘드리아가 곧 기(氣)“라는 명제를 정식으로 내놓기까지 했다.2


여기서 발을 멈춰야 한다. 솔깃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닮음이지 같음이 아니다.

기가 곧 미토콘드리아라는 말은 매력적이다. 왕빙이 천 년 전에 기를 매개 에너지로 그려 둔 자리에, 현대 생물학의 발전소가 빈틈없이 들어맞는 듯 보이니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 대응은 아직 이론과 가설의 단계에 있다. 사람을 대상으로 ’기가 곧 미토콘드리아’임을 직접 증명한 연구는 없다. 구조가 닮았다는 것을 발견한 것과, 둘이 같은 하나임을 증명한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3

이 구별을 흐리면, 매혹은 곧 미끄럼틀이 된다. 기가 미토콘드리아라면, 기를 다스리는 옛 수련이 곧 발전소를 정비하는 과학이라 우기게 되고, 그러면 검증되지 않은 것을 검증된 것처럼 팔게 된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그 매혹적인 자리가, 가장 흔한 거짓의 자리가 되는 까닭이다. 그러니 정직하게 이렇게만 말해 둔다. 옛사람이 기라 부른 그 가운데 자리를, 오늘의 과학은 미토콘드리아라는 발전소에서 비슷하게 더듬고 있다. 닮았다, 그러나 같다고는 아직 말할 수 없다. 둘이 같다고 우기는 순간, 앞에서 다짐한 그 빗장—나를 비우고 사물을 사물로 보는 태도—이 풀려 버린다.


다만 이렇게 조심스레 옮겨 놓고 나니, 진인의 그림이 한결 또렷해진다. 정미한 것을 들여 기를 맑게 한다는 옛말은, 깨끗한 연료를 넣어 발전소를 군더더기 없이 잘 돌린다는 말과 멀지 않다. 적게 들여도 충만한 까닭이, 많이 때서가 아니라 깨끗이 태우기 때문이라는 것.

그렇다면 그 맑은 기운이 가득한 몸은, 겉으로 어떤 모습일까. 옛 의서는 그것을 군더더기 없는 한 단어로 적어 두었다.

다음 물음: 기운이 맑고 충만한 몸을, 옛 의서는 왜 ’가벼운 몸’이라 불렀는가?


Footnotes

  1. 王冰 注 — “真人心合於氣, 氣合於神, 神合於无.” 기(氣)를 마음(心)과 생명력(神) 사이의 매개로 둔 구조.

  2. Wallace(2025) 등 — 미토콘드리아를 동양 의학의 氣에 대응시키는 명제. 미토콘드리아는 ATP 생산과 더불어 활성산소 신호로 면역·세포 운명을 조율하는 매개 기관이며, 그 기능 저하가 만성 피로·노화와 연관된다는 보고가 있다.

  3. 氣–미토콘드리아 대응은 이론·기초 연구 단계이며, 인체 임상시험으로 직접 검증된 바 없다. 닮은 구조의 발견과 동일성의 증명은 구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