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 옛 의서에게 묻다
진인은 무엇을 먹는가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의서인 『황제내경』의 첫 편은, 뜻밖에도 병이 아니라 잘 사는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떻게 병을 고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애초에 병들지 않고 오래 또렷이 사느냐. 책을 펴자마자 황제가 던지는 물음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답으로 네 등급의 사람을 세운다. 진인(眞人), 지인(至人), 성인(聖人), 현인(賢人). 천지를 넘나드는 진인에서, 천지를 본받아 따르는 현인까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차례다.
그 첫째인 진인을 두고 옛 글은 이렇게 적었다. 호흡정기(呼吸精氣), 독립수신(獨立守神). 정미한 기운을 호흡하고, 홀로 서서 정신을 지킨다. 여기서 눈에 걸리는 말이 ’정미한 기운’이다. 정미하다는 것은 거칠고 잡스러운 것을 걸러 낸, 가장 맑고 고운 상태를 말한다. 진인은 많이 먹어 사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맑고 정미한 것을 적게 들여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낯설지 않다. 순록도 그러했다. 빈약하지만 단순한 입력으로, 정교한 몸을 지었다. 진인의 ’정미한 입력’은 순록의 ’한 줌 이끼’와 같은 자리를 가리킨다. 들이는 양이 아니라, 들이는 것의 맑음과 그것을 다루는 솜씨가 몸을 짓는다는 것. 이천 년 전의 글과 극지의 짐승이, 우연히도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옛 의서는 이 네 등급을 단지 도덕의 높낮이로만 세우지 않았다. 비움의 눈으로 다시 읽으면, 그것은 에너지를 다루는 솜씨의 차례로도 보인다.
진인은 입력 자체가 가장 정미하다. 가장 맑은 것을, 가장 적게. 지인은 한 걸음 아래에서, 음양에 화합하고 사계절에 몸을 맞춘다(和於陰陽, 調於四時). 곧 자연의 박자에 자기 몸의 박자를 포갠다. 성인은 세속 한가운데서 욕심을 알맞게 다스리며 산다. 현인은 천지의 법칙을 살펴 본받아 따른다(法則天地).1 가장 적게 들여 가장 온전히 사는 데서부터, 자연의 박자에 맞추고, 마음을 다스리고, 이치를 본받는 데까지. 같은 원리가 네 가지 깊이로 펼쳐진 셈이다.
놀라운 것은 이 차례가 지금까지 따라온 길과 포개진다는 점이다. 정미한 입력(진인)은 1부의 순록이었고, 자연의 박자에 맞춤(지인)은 2부의 비움–채움 리듬이었다. 옛사람은 미토콘드리아도 칼로리도 장내 미생물도 몰랐다. 그저 오래, 아주 오래 사람을 지켜보았을 뿐이다. 무엇을 적게, 맑게 들이고, 무엇을 덜며, 어떤 박자로 사는 사람이 끝까지 또렷한지를. 그 수천 년의 관찰이, 현대 과학이 이제 막 비싼 장비로 더듬는 자리를 일찍이 다른 언어로 적어 둔 것이다.
그런데 진인을 설명하는 그 말, ’정미한 기운을 호흡한다’에는 풀리지 않는 한 글자가 박혀 있다. 기(氣)다.
기운이 좋다, 기가 막힌다, 기가 빠진다. 우리 일상에 이토록 깊이 배어 있으면서도, 정작 그것이 무엇이냐 물으면 아무도 똑부러지게 답하지 못하는 말. 동양 의학과 수련이 그토록 자주 기대는 그 기운. 그것은 막연한 신비인가, 아니면 오늘의 말로 옮길 수 있는 무엇인가. 이 한 글자를 풀지 않고는, 진인의 정체에 더 다가갈 수 없었다.
다음 물음: 옛사람이 말한 기(氣)를, 오늘의 언어로는 무엇이라 옮길 수 있는가?
Foot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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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내경』「소문」「상고천진론」의 4단계(眞人·至人·聖人·賢人). 진인의 呼吸精氣·獨立守神, 지인의 和於陰陽·調於四時, 성인의 處天地之和, 현인의 法則天地를 에너지 변환 효율의 위계로 재독해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