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자연에게 묻다
고래와 나무 — 거대함과 단순함
지구에서 가장 큰 짐승은 흰긴수염고래다. 몸길이가 삼십 미터에 가깝고, 몸무게가 백 톤을 넘는다. 그 거대한 몸이 대체 무엇을 먹고 사는가. 사자처럼 큰 짐승을 사냥하리라 짐작하기 쉽지만, 답은 정반대다. 크릴, 곧 새끼손가락만 한 작은 새우다. 지구에서 가장 큰 몸이, 가장 작은 먹이를 먹는다. 순록 앞에서 본 그 역설이, 여기서는 비교할 수 없이 큰 규모로 되풀이된다.
비결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한 입의 크기다. 고래는 크릴 떼를 향해 빠르게 돌진하며, 한 번에 제 몸집만 한 물을 통째로 삼킨다. 그러고는 빗살 같은 수염 사이로 물만 밀어내고 크릴만 걸러 남긴다. 크릴이 빽빽이 모인 곳에서는, 한 번 삼키는 데 드는 힘보다 수십, 수백 배의 에너지를 한꺼번에 거둬들인다.1 흥미로운 것은 고래가 아무 때나 입을 벌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크릴이 드문 곳에서는 힘만 들고 얻을 것이 적으니 그냥 지나치고, 빽빽이 모인 곳에서만 집중해서 삼킨다. 5편의 순록이 빌 것을 내다보고 미리 줄였듯, 고래는 거둘 것이 많을 때를 가려 한꺼번에 거둔다. 같은 영리함의 다른 얼굴이다.
다른 하나가 더 깊다. 몸이 클수록 몸무게 일 킬로그램당 쓰는 에너지가 도리어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작은 짐승은 부피에 견주어 살갗이 넓어 열을 쉽게 빼앗기고, 그래서 쉴 새 없이 태워야 체온을 지킨다. 생쥐의 심장이 분당 수백 번 뛰는 까닭이다. 반대로 큰 짐승은 부피에 견주어 살갗이 좁아 열을 덜 잃고, 그만큼 단위 무게당 살림이 헐겁다.2 거대함은 얼핏 에너지를 펑펑 쓰는 낭비처럼 보이지만, 단위로 따지면 오히려 더 알뜰한 살림이었다. 큰 그릇이 천천히 식듯, 큰 몸은 느리고 효율적으로 산다.
식물로 눈을 돌리면 단순함은 끝까지 간다.
나무는 빛과 물과 공기, 이 셋만으로 제 몸을 짓는다. 흙에서 얼마간의 양분을 얻지만, 그 거대한 줄기와 가지의 대부분은 사실 공기 중의 탄소와 햇빛으로 지어진 것이다. 입력이라 할 것이 이보다 단순할 수 없다. 그런데 그 빛을 화학 에너지로 바꾸는 광합성의 효율은 의외로 낮다. 이론상 최대가 몇 퍼센트에 그치고, 실제 대부분의 식물은 쏟아지는 햇빛의 고작 일이 퍼센트만 제 몸으로 바꾼다.3 그토록 단순한 입력을, 그토록 낮은 효율로 받아들이면서도, 나무는 숲을 이루고 수백 년을 산다. 비결은 속도가 아니라 시간에 있었다. 적게 들어오는 것을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오래 쌓아 올리는 것. 조급하지 않은 축적이 거목을 만든다.
순록과 고래와 나무는 몸집도 사는 곳도 너무나 다르다. 그러나 셋이 한 자리를 가리킨다. 빈약하거나 단순한 입력이, 그것을 처리하는 구조를 도리어 정교하게 다듬는다는 것. 작은 순록은 줄여서, 거대한 고래는 한꺼번에 그리고 헐겁게, 나무는 느리게 오래. 방식은 저마다 달라도 원리는 하나다. 정교함은 많이 들이는 데서 오지 않는다.
여기까지 오자 한 가지 의심이 들었다. 이것이 그저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골라낸 신기한 사례들의 모음일 뿐인가, 아니면 생명을 꿰뚫는 하나의 이치인가. 사례를 열 개 스무 개 더 쌓는다고 답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사례의 수가 아니라, 보는 방식 자체를 물어야 할 차례였다. 같은 풍경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다음 물음: 이 흩어진 사례들에서 하나의 이치를 보려면, 자연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