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무엇으로 사는가

1부 · 자연에게 묻다

겨울이면 스스로 줄인다

막아도 새는 것이 있다. 아무리 두꺼운 털과 영리한 핏줄을 가졌어도, 바람이 더 매워지고 먹이가 더 줄면 만들어 낼 열의 양 자체가 모자라는 날이 온다. 잘 분해하고, 잘 되돌리고, 잘 가두는 것만으로는 더 버틸 수 없는 한계. 그 막다른 자리에서 순록은 무엇을 줄여 겨울을 나는가.

답은 뜻밖에도, 자기 자신을 줄이는 것이다.

순록은 겨울이 되면 스스로 몸의 불을 낮춘다. 가만히 있을 때 쓰는 에너지, 곧 안정 시 대사량이 겨울에는 여름의 약 66퍼센트까지 떨어진다.1 같은 짐승인데 겨울의 순록은 여름의 순록보다 한참 적게 태우며 산다. 활동을 줄이고, 몸을 데우는 화력 자체를 낮추고, 먹는 양도 절반 가까이 줄인다. 한겨울의 순록은 말하자면, 불을 최소한으로 줄여 둔 난로 같은 상태로 들어간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그 줄임의 순서다. 먹이가 떨어져 어쩔 수 없이 굶다가 대사가 처지는 것이 아니다. 순록은 추위와 굶주림이 닥치기 전에 미리 화력을 낮춘다. 곳간이 빌 것을 내다보고, 빌 것에 맞추어 살림의 규모를 먼저 줄여 두는 셈이다. 들어올 것이 적으면, 쓸 것도 미리 줄인다. 이 선제적인 줄임이 있어, 빈약한 겨울 이끼만으로도 수지가 맞는다. 추위에 떠밀려 줄이는 것과, 추위를 내다보고 미리 줄이는 것은 전혀 다르다. 앞의 것은 위기지만, 뒤의 것은 전략이다.


생각해 보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비움이다.

앞에서 본 순록의 솜씨는 모두 ‘잘 처리하는’ 기술이었다. 미생물로 잘 분해하고(3편), 질소를 잘 되돌리고, 열을 잘 가둔다(4편). 그것들은 들어온 것을 알뜰히 다루는 솜씨였다. 그러나 이번 것은 결이 다르다. 처리하기 전에, 애초에 쓰는 양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효율을 아무리 끌어올려도 넘지 못하는 벽이 있을 때, 마지막 답은 규모를 줄이는 데 있었다.

낭비를 줄이는 것과 규모를 줄이는 것은 다르다. 낭비를 줄이는 것은 새는 곳을 틀어막는 일이고, 규모를 줄이는 것은 살림 자체를 작게 꾸리는 일이다. 형편이 어려운 살림을 떠올리면 쉽다. 처음에는 새는 데를 막고 아껴 쓰며 버틴다. 그래도 모자라면, 끝내는 씀씀이의 크기 자체를 줄인다. 큰 집을 작은 집으로 옮기듯. 순록은 이 두 가지를 다 한다. 그리고 둘 다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더 들이는 쪽이 아니라, 덜 쓰는 쪽이다. 채워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줄여서 버티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수련에서 듣던 ’힘을 빼라’가 떠오른다. 위기 앞에서 더 힘을 주는 것이 본능이지만, 정작 오래 버티는 길은 불필요한 힘을 먼저 빼는 데 있었다. 순록은 그것을 한 해의 살림으로, 몸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가 걸렸다. 순록은 그리 크지 않은 짐승이다. 작은 몸이니 적게 먹고 적게 쓰는 살림이 가능한 것 아닐까. 작은 그릇은 적게 담아도 차는 법이니까. 그렇다면 몸집이 집채만 한 짐승에게는, 이 ’줄임의 살림’이 통하지 않는 것 아닐까. 큰 몸은 큰 입력을 요구할 테니 말이다.

그 의심을 안고 더 큰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자 가장 뜻밖의 답이 거기 있었다. 줄임의 이치는 작은 몸의 사정이 아니었다.

다음 물음: 지구에서 가장 큰 짐승은, 가장 작은 먹이로 그 거대한 몸을 어떻게 유지하는가?


Footnotes

  1. Nilssen et al.(1984), American Journal of Physiology. 스발바르 순록의 겨울 안정 대사율은 여름값의 약 66%로 감소하며, 입식량도 여름 대비 큰 폭(약 −57%)으로 줄어든다. 계절적 대사 저하는 갑상선 호르몬 변화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식이 섭취량의 발열 효과 등이 함께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