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무엇으로 사는가

0부 · 물음의 발생

비움인가, 리듬인가

비우면 된다. 처음 자료를 펼쳤을 때는 그렇게 보였다.

근거는 충분해 보였다. 굶으면 세포는 스스로를 청소한다.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바로 그 청소 작용, 자가포식(自家貪食)의 원리를 밝힌 연구에 돌아갔다. 손상된 단백질과 낡은 세포 소기관을 분해해 다시 연료로 쓰는 과정이다.1 단식은 이 청소를 강하게 켠다. 순록이 겨울에 지출을 줄이듯, 사람도 입력을 줄이면 몸 안의 정비가 시작된다. 그러니 결론은 명료해 보였다. 덜어낼수록 몸은 깨끗해지고 정교해진다.

그런데 자료를 더 읽을수록, 그 명료함에 금이 갔다.


문제는 단순했다. 비우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가포식은 낡은 것을 분해하지만, 분해가 끝이 아니다. 분해한 자리에 새것을 다시 지어 올려야 한다. 비움 다음에 채움이 와야 하는 것이다. 단식 뒤에 음식이 들어와 단백질 합성이 다시 켜지지 않으면, 몸은 정비되는 것이 아니라 헐린다. 실제로 끊임없이 굶기만 한 몸에서는 근육이 빠지고, 장기 칼로리 제한이 지나치면 도리어 손실이 나타난다는 보고가 쌓여 있다.2 비움은 약이지만, 비움만으로는 독에 가까워진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곳간을 비우는 것은 묵은 것을 들어내기 위함이지, 곳간을 텅 빈 채로 두기 위함이 아니다. 비움은 채움을 위한 준비일 때에만 약이 된다. 그런데 비움이라는 한 동작에만 눈이 팔려, 그 뒤에 따라와야 할 채움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비웠다 채웠다 하는 번거로운 박자가 필요한가. 그냥 적당히 채워 두면 안 되는가.

답은 결핍의 역설에 있었다. 몸은 부족함을 겪을 때 비로소 정비에 나선다. 모자람이라는 신호가 들어와야 낡은 것을 분해하고, 효율을 끌어올리고, 다음 부족에 대비해 더 단단해진다. 적당한 결핍이 오히려 회복의 방아쇠가 되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것을 호르메시스라 부른다. 약한 스트레스가 몸을 망가뜨리는 대신 적응의 힘을 길러 내는 현상이다.3

가장 익숙한 예가 운동이다. 운동은 근육을 일부러 미세하게 헐어 놓는다. 그리고 쉬는 동안 몸은 그 자리를 전보다 조금 더 튼튼하게 메운다. 헐고 — 쉬고 — 더 단단해지고. 만약 헐기만 하고 쉬지 않으면 몸은 무너지고, 쉬기만 하고 헐지 않으면 근육은 자라지 않는다. 강해지는 것은 부하 그 자체가 아니라, 부하와 회복이 번갈아 드는 그 왕복 속에서다. 다만 부하가 지나치면 회복이 따라잡지 못해 도리어 상한다. 약이 되는 결핍과 독이 되는 결핍 사이에는 분명한 선이 있다.

비움도 똑같았다. 비움은 운동의 부하와 같고, 채움은 회복과 같다. 효험은 비움의 깊이가 아니라, 비움과 채움이 도는 박자에서 나온다.


그러고 나서 둘러보니, 그 박자는 생명 어디에나 있었다.

숨이 그렇다. 들이쉬기만 할 수 없고 내쉬기만 할 수도 없다. 들숨과 날숨의 왕복이 곧 숨이다. 심장이 그렇다. 수축과 이완을 쉼 없이 번갈아야 피가 돈다. 잠이 그렇다. 깨어 활동하고 잠들어 정비하는 하루의 박자가 어긋나면 몸이 먼저 안다. 생명은 한 방향으로 곧장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두 극을 오가는 박자로 산다. 비움과 채움은 그 수많은 박자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순록도 그러했다. 순록은 겨울 내내 굶는 짐승이 아니다. 겨울에는 대사를 낮추어 아끼고, 봄이 오면 풀을 먹어 다시 채운다. 줄임과 채움의 한 해 주기가 그 몸을 살린다. 교실에서 보인 것은 ’비움’이라는 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순록이 사는 것은 비움과 채움이 돌아가는 하나의 사이클이었다. 그 사이클의 한 국면만 보고 전부로 여긴 셈이다.


여기서 한 발 물러서야 했다.

“비우면 되는가”라는 첫 물음은 절반만 맞은 것이었다. 더 정확한 물음은 이것이었다. 비움과 채움은 어떤 박자로 와야 하는가. 무엇을 얼마나 비우고, 언제 다시 채워야 몸이 헐리지 않고 도리어 단단해지는가. 그리고 그 박자는 사람마다, 나이와 형편마다 다를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약이 되는 결핍이 누군가에겐 독이 될 수도 있다.

이 박자를 짐작만으로 정할 수는 없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분명했다. 인간의 추측을 앞세우기 전에, 그 박자를 수백만 년에 걸쳐 가장 정교하게 익힌 자에게 직접 물어야 했다. 사람이 아니라, 자연에게. 순록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겨울이 오기 전에 지출을 줄이고, 봄을 기다려 다시 채운다. 그 정확한 박자를 순록은 대체 어디서 배운 것일까.

다음 물음: 빈약한 입력으로 정교한 몸을 짓는 자연의 그 박자를, 순록은 대체 어떻게 익혔는가?


Footnotes

  1.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오스미 요시노리). 영양 결핍 시 AMPK 활성화·mTORC1 억제를 통해 자가포식이 개시되어 손상 단백질·소기관을 분해·재활용한다.

  2. 자가포식·미토파지는 제거(비움) 자체보다 이후의 재생합성과 쌍을 이룰 때 효과적이며, 식후 단백질 합성 재개가 없으면 근감소로 이어진다.

  3. 호르메시스(hormesis) — 저용량 스트레스가 적응 반응을 유도하는 이상성(biphasic) 용량-반응. 단식·운동·저산소·온열 자극이 Nrf2·AMPK·열충격단백질 등을 통해 저항성을 높이나, 적정 용량을 넘으면 해롭다(역U자 곡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