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부 · 물음의 발생
교실에서 본 순록
문화 다양성 단원을 수업하던 날이었다.
세계 여러 곳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학생들과 함께 보던 참이었다. 사막의 유목민, 열대의 화전민, 그리고 툰드라의 사람들. 끝없이 눈 덮인 땅, 그 위를 느리게 이동하는 사람들과 짐승들의 영상이 흘렀다. 여느 수업 자료처럼 무심히 지나갈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순록 한 마리가 코로 눈을 헤치고 있었다. 파헤친 자리에 회백색의 납작한 것이 드러났다. 이끼였다. 순록은 그것을 천천히 씹었다.
수업의 본래 이야기는 사람의 삶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내 눈은 순록에 가서 멈췄다. 어깨까지 키가 오는 짐승이, 손바닥만 한 이끼 한 줌을 먹고 있었다. 저 빈약한 한 줌으로 두꺼운 가죽과 빽빽한 털, 영하 사십 도를 견디는 다리, 머리 위로 솟은 뿔이 만들어진다. 신기했다. 학생들에게는 다음 장면을 이야기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그 순록 앞에 멈춰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신기함은, 수업이 끝나고도 가라앉지 않았다.
이상한 것은 이끼 자체가 아니었다. 이끼가 순록이 된다는 것, 그 변환이었다.
생물학은 일부를 설명해 준다. 순록의 위장에는 사람에게 없는 세균이 산다. 그 세균이 이끼의 질긴 탄수화물을 분해해 에너지로 바꾼다. 같은 이끼를 사람이 먹으면 그저 지나가지만, 순록은 그것을 몸으로 만든다.1 더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순록은 겨울이 되면 스스로 대사를 낮춘다. 한 연구에 따르면 겨울의 안정 시 대사율이 여름의 약 66퍼센트까지 떨어진다.2 먹이가 줄어 어쩔 수 없이 덜 쓰는 것이 아니다. 추위가 오기 전에, 쓸 양을 미리 줄여 두는 것이다.
설명이 쌓일수록 신비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깊어졌다. 수백만 년의 혹한이 이 정교한 구조를 한 칼 한 칼 조각해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그리고 한 가지가 또렷해졌다. 입력이 단순할수록, 변환의 구조는 더 정밀하다. 먹이가 희박할수록, 그 한 줌을 남김없이 몸으로 바꾸는 내부의 장치가 더 정교해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하면 까닭이 보인다. 풍요로운 곳에서는 대충 먹고 대충 버려도 살아남는다. 넘치니까 굳이 정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빈약한 곳에서는 한 톨도 허투루 흘릴 수 없다. 모자람이야말로, 그것을 다루는 솜씨를 끝까지 벼리는 숫돌이었다. 순록의 정교함은 풍요의 선물이 아니라 결핍의 산물이었다.
여기서 멈추면 그저 흥미로운 자연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 이상의 것이 있었다.
이십 년 가까이 수련을 해오면서 오래 들어온 말이 있다. 힘을 빼라. 처음에는 그 뜻을 몰랐다. 힘을 쓰는 것이 무예인데 힘을 빼라니, 모순처럼 들렸다. 쓸 데 없는 긴장을 덜어내면 같은 힘으로 더 멀리, 더 깊이 간다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조금씩 알았다. 채워서가 아니라 덜어서 강해지는 길이 있다는 것. 순록이 이끼 한 줌으로 그 몸을 짓는 이야기가, 어쩐지 그 오래된 가르침과 같은 자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원리는 순록만의 것인가. 빈약한 입력으로 정교한 몸을 짓는다는 이 이치가, 사람의 몸에도, 나아가 생명 일반에도 흐르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동양의 옛사람들은, 이미 이것을 보고 다른 말로 적어 두지 않았던가. 한 장면이 던진 물음이, 자연과 의학과 옛 글을 한꺼번에 두드리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신기하다 한 번 생각하고 화면을 넘겼을 것이다. 궁금증은 대개 그렇게 흩어진다. 물을 곳이 마땅치 않으면, 물음은 떠오른 자리에서 곧 가라앉는다.
이번에는 흘려보내지 않았다. 한 가지만 미리 밝혀 둔다. 이 글을 포함한 이 연재는, 순록 앞에서 떠오른 물음을 인공지능과 함께 따라간 기록이다. 흩어질 뻔한 물음을 몇 갈래로 나누어 자료를 모으고, 그것을 그동안 공부해 온 옛 기록 — 주역과 황제내경과 본초 — 과 맞대어 보았다. 다만 인공지능은 자료를 날라 줄 뿐, 무엇을 물을지도, 그 답을 어디까지 믿을지도 정해 주지 않았다. 그 자리는 끝내 사람의 몫으로 남았다.
그렇게 첫 물음을 던질 차례가 되었다. 순록은 비움으로 그 몸을 지었다. 굶음이, 덜어냄이, 줄임이 정교한 몸을 만든다고 했다. 그렇다면 답은 의외로 단순해 보인다. 비우면 되는 것 아닌가. 적게 먹고, 많이 버리고, 자주 줄이면.
그런데 막상 자료를 펼치자, 바로 그 자리에서 첫 번째 함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물음: 비움은 정말 그 자체로 좋은 것인가? 덜어내기만 하면 몸은 더 정교해지는가?